칼보다 강한 펜 [국정일보 문이주 기자]

문이주 기자

작성 2020.05.19 12:01 수정 2020.05.19 12:01



[문이주 기자] 현재의 지구상에는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굴복시키려는 형태가 되풀이되고 있다. 경제 보복 또한 마찬가지이다. 무력은 무력을,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까!

서희(942-998)는 고려 광종 때 광종에게 직언을 서슴치 않았던 인물로 서희도 아버지를 닮아 성품이 엄하고 강직하였다.

그는 18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국교를 여는 데 앞장섰다. 서희의 인격에 감복한 송 태조 조광윤은 검교병부상서(현재 국방부장관)의 명예직을 제수하였다.

성종 2년에는 병관어사(국방장관)에 올랐는데, 이때 그의 나이 41세였다. 이후에도 승승장구하여 내사시랑(현재 부총리)이 되었다.

성종 12년에 거란의 소손녕은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로 쳐들어와 항복을 하라고 했다. 이에 여러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성종은 어떤 중신의 서경 이북의 땅을 떼어주자는 할지론(割地論)을 따르고, 서경의 쌀 창고를 열어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고 그래도 남은 쌀은 대동강에 버리도록 했다.

이를 보다 못한 서희가 나섰다. “식량이 충분하면 성()도 지킬 수 있고, 싸움도 이길 수 있습니다. 싸움의 승부는 힘의 강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적을 아느냐 모르냐에 있습니다.

하물며 식량은 백성들이 피땀 흘려 거둔 결실인데 작의 수중에 들어갈망정 헛되이 강물에 버리는 것은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옵니다.” 그리고 또, 서희는 거란의 동경에서 우리 안북부에 이르는 수백 리 땅은 원래 여진족이 살던 곳입니다.

광종이 그것을 빼앗아 거기에 거주송성 등의 성을 쌓았습니다. 이제 거란이 온 것은 이 두 성을 다시 차지하려는 것뿐인데, 고구려의 옛 땅을 자지겠다고 큰 소리 치는 것은 만대의 치욕이니 아무리 그들의 병력이 강하다고 하여 서경 이북의 땅을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삼각산 이북도 고구려 땅이니 만약 저들이 또 요구한다면 주시겠습니까? 그것은 신이 군사를 이끌고 한번 더불어 싸운 뒤에 논의해도 늦지 않습니다.”

한편 이몽전이 고려에 돌아가 자신의 말을 전했건만 아무런 소식이 없자, 진지에서 기다리던 소손녕은 초조하고 불쾌했다.

소손녕은 실력을 행사하기 위해 안융진(평남 안주)를 쳤으나, 중랑장 대도수와 낭장 유방이 지형지물을 이용해 방어해서 더 이상 공격할 수가 없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어 사람을 보내어 항복을 재촉했다.

한편, 성종도 전쟁만 고집할 수 없어 화평사신으로 합문사인 장영을 거란 진영으로 보내 화친을 청했다. 소손녕은 거만하게 미관말직에 있는 자를 나에게 보내다니 용서할 수 없다. 다시 대신을 다시 보내 나와 대면하게 하라.”고 했다.

이에 성종은 다시 회의를 소집하고 누가 80만 대군을 거느린 소손녕 진영으로 갈 것인지를 물었다. 모든 대신이 두려워하여 침묵하는 가운데 서희가 자청했다.

서희는 국서를 받들고 소손녕의 진영으로 갔다. 소손녕은 나는 대국의 장수이니 뜰 아래에서 절를 하라는 말에 서희는 굴복하지 않고 숙소에 가서 드러누워 마음대로 하라고 배짱을 내밀었다.

소손녕은 초조했다. 사실 이번 침략의 목적은 송나라와 고려의 관계를 끊으려는 목적이 있었다. 서희가 기싸움에서 이긴 셈이다. 서로 나란히 얼굴을 마주하고 협상에 임했다.

소손녕이 먼저 그대 나라가 신라땅에서 일어났고 고구려 땅은 우리의 소유인데 그대 나라가 우리 땅을 점령하였고 또, 우리와 국경을 접하였는데도 바다를 넘어 송나라를 섬기고 있다.

만일 땅을 떼어 바치고 조공을 바치면 무사할 것이다.” 이에 서희는 아니다. 우리나라는 고구려의 옛 땅에서 일어났으므로 평양에 수도를 정하고 국호를 고려라 했다.

땅의 경계로 본다면 그대 나라 동경도 다 우리 경내에 있는 것인데 어찌 국경을 침범했다 하는가? 압록강 안팎도 또한 우리의 경내인데 지금 여진이 그 사이를 막아 조공을 바치지 못했다.

만일 여진을 내 쫓고 우리 땅을 되찾아 요새를 쌓고 도로를 이으면 왜 수교하지 못하겠는가. 장군께서는 나의 말을 임금에게 전하시오.” 서희는 더 나아가 삼국시대 고구려의 예를 들어 지금의 형세를 논했다. 서희의 말은 워낙 조리가 있고 굳건하므로 역사에 대한 문외한인 소손녕은 단 한 미디도 반박하지 못했다.

이로서 두 나라는 화해를 하고 고려는 거란의 연호를 쓰고 송과 외교를 끊기로 약속했다. 그 대신 압록강 이남의 강동 6주를 얻는 실리를 챙겼다. 이렇게 서희의 지식이 소손녕의 칼을 꺽은 것이다.


Copyrights ⓒ 경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문이주기자 뉴스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