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사람들의 종말 [경찰일보 문이주 기자]

입력시간 : 2020-03-17 13:49:20 , 최종수정 : 2020-03-19 19:20:12, 문이주 기자





[경찰일보 문이주 기자] 이숙번은 이성계의 다섯 번째 아들 이방원이 두 번의 왕자의 난 때 방원을 도와 성공으로 이끈 일등공신이다.

이숙번은 칠원부원군 윤자당과 어머니는 같고 아버지가 다른 형제이다. 윤자당의 어머니 남씨는 젊어서 과부가 되어 경상도 함양에서 살았다.

윤자당이 일곱 살 때 어머니 남씨는 아들을 데리고 무당을 찾아가 운수를 물었다. “부인, 걱정 마시오. 이 아이가 귀하게 될 상이오. 허니 반드시 아우의 힘으로 귀하게 될 것이오.” “무슨 말씀이오? 과부에게 어찌 아우가 있겠소?” “곧 아우가 생길 일이 있소.” “내가 재혼이라도 한단 말이오?” “팔자는 속이지 못하는 법이오. 두고 보시오.” 무당의 말대로 남씨는 얼마 후 이씨 집에 재가하여 이숙번을 낳았다. 무당의 말대로 후에 윤자당은 이숙번의 영향으로 부원군이 되었다.

방원이 왕위에 오르니 이숙번은 자신의 공을 믿고 점점 교만해져갔다. 같은 품계일지라도 마치 하인대하 듯 하고, 나중에는 태종이 불러도 병을 핑계로 가지 않는 등 방자하기 이를 데 없었다.

돈의문 안에 이숙번의 집은 규모가 궁궐 같았다. 늘 풍악 소리가 그치지 않고, 주지육림의 음식냄새가 퍼져 나왔다.

그에게 뇌물로 벼슬을 청하려고 오는 선비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이숙번이 조정의 요소요소에 심복을 심어두었기에 서찰을 써서 보내면 벼슬을 얻었다. 이숙번은 말굽소리가 듣기 싫다는 이유로 조정에 건의하여 통행금지법을 받아내고 돈의문 통행을 제한했다.

권력을 이용한 그의 사치와 휭포는 날이 갈수록 심해져 조정에서는 이숙번을 탄핵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태종은 공신을 차마 죽일 수는 없어 장 20도를 쳐서 함양 땅으로 귀향 조치했다. 이숙번은 하루아침에 권세를 잃고 죄인의 몸으로 전략했다.

이숙번은 차차 잊혀져가는 듯 했으나 세종 때 이르러 도승지 김돈에게 순금 띠를 뇌물로 바치고 서울로 돌아갈 수 있도록 힘써 달라는 청탁을 했다.

때마침 세종이 <용비어천가>를 지으려고 선대의 일을 잘하는 신하들을 모으려고 했다.

뇌물을 받은 김돈은 이 기회에 이숙번을 즉시 추천했다. 세종은 선왕에게 죄를 지어 유배되어 있는 자를 부를 수 없다고 했다. 김돈은 선대왕의 일을 이숙번 만큼 잘 아는 자가 없다하여 우여곡절 끝에 한양으로 돌아왔지만, <용비어천가> 작업이 끝나고 도승지 김돈에게 이숙번을 유배지로 돌려보내게 했다.

이로 인해 이숙번은 도승지에게 주었던 순금 띠를 되돌려 받아 가지고 유배지로 돌아가 함양에서 말년을 쓸쓸히 보내다 죽었다.

권람은 시집보낼 딸이 있어 사윗감을 골랐다. 그때 남이의 집에서 청혼이 들어왔다. 권람이 남이의 사주를 보았다. “이 사주는 반드시 젊은 나이에 요절 할 것이오.” 점쟁이는 불길한 말을 했다. 또 딸의 사주를 물어 보았다. “이 사주도 수명이 매우 짧고 자식이 없으나 복만 누리고 화는 입지 않을 것이오.” 권람은 남이를 사위로 맞았다.

남이 장군은 태종의 외손자로서 조선 세조대의 인물로 17세의 나이에 무과에 급제했다. 평소 강직하고 굽힐 줄 모르는 성품을 지녔던 그는 함경도에서 이시애의 난이 일어났을 때 뛰어난 무공을 발휘하여 출셋길에 올랐다.

세조 말년에 남이는 임금의 총애를 받아 구성군 이준의 뒤를 이어 28세의 젊은 나이에 병조 판서가 되었다.

하지만 신진세력의 약진을 고까워하던 한명회와 신숙주 등 훈구대신들의 견제를 받았다. 세조가 승하하고 예종이 등극하자마자 남이는 병조 판서에서 겸사복장으로 좌천되는 수난을 당했다.

그로부터 불과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남이는 역모를 꾀했다는 유자광의 고변으로 체포되어 능지처참 당하고 가문은 멸문지화를 당했다.

일찍이 남이가 남긴 시 한 수는 사나이의 기상을 한껏 뽐냈다.

백두산 돌을 다 없애고/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없어졌다./ 사나이 스무살에 나라를 평정 못한다면/ 뒷세상에 그 누가 대장부라 이르리오.

결국 이 시 한 수가 자신을 옭아매는 마수가 되어 죽음으로 몰고 갔다. 야사에 따르면 훗날 유자광이 그의 역모를 고변할 때 이 한시의 3남아이십미평국(男兒二十未平國)’의 평평할 평() 자를 얻을 득() 자로 고쳐 모함했다고 한다.

지금도 조그마한 일에도 점집을 찾는 사람이 많다. 선거철이 되면 후보자들도 자신의 당락을 점치러 유능한 점쟁이를 찾는다고 한다. 무인의 말을 신뢰하면 거기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이숙번은 지나친 권력을 탐하려다 결국 파멸에 이르렀고, 남이는 모함으로 말미암아 멸문지화를 당했다. 이런 것을 거울삼아 감당할 욕심으로 자신을 지키고, 모함 당할 빌미는 만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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